성범죄로 수사를 받거나 피해를 입었을 때 가장 막막한 것은, 사건이 형사처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성범죄는 어떤 유형인지에 따라 적용 법조와 성립요건이 다르고, 유죄가 인정되면 형벌과 별개로 신상정보 등록이나 취업제한 같은 보안처분이 함께 따라옵니다. 그래서 성범죄 수사 초기부터 형사절차와 보안처분을 함께 염두에 둔 대응이 필요합니다. 어느 한쪽만 보고 움직이면, 형은 줄였더라도 예상치 못한 보안처분에 발목이 잡히거나 그 반대의 상황을 맞을 수 있습니다.
같은 추행이라도 적용 법조가 다르다
‘추행’이라는 같은 말이라도 행위의 태양과 피해자에 따라 적용되는 법조가 달라집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추행하면 강제추행(형법 제298조, 법령 원문: law.go.kr 형법 제298조)이 되고, 사람의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추행하면 준강제추행(제299조)이 됩니다. 미성년자나 심신미약자, 피보호자 등을 위력이나 위계로 추행하면 위력·위계에 의한 추행으로 별도의 규정이 적용되고, 친족관계나 주거침입, 흉기 휴대, 13세 미만 같은 사정이 더해지면 성폭력처벌법이나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라 형이 가중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적용된 죄명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강제추행의 기준이 바뀌었다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해, 대법원은 종래 폭행·협박이 추행에 앞선 경우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2023년 전원합의체는 이를 바꿔, 형법상 폭행죄·협박죄에서 말하는 정도 — 신체에 대한 불법한 유형력의 행사나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해악의 고지이면 충분하고 항거곤란까지는 요구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8도13877). 따라서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강제추행이 부정되지는 않습니다.
성범죄 수사와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나
성범죄의 친고죄 규정은 폐지되어, 고소가 없더라도 수사와 처벌이 가능합니다. 수사 단계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행위의 경위·태양, 당사자 관계, 영상이나 메시지·진료기록 같은 객관적 증거가 핵심이 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 진술조력이나 신뢰관계인 동석 같은 제도가 운영됩니다. 재판에서는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으며, 피해 회복과 합의 여부가 양형의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성범죄 수사에서 초기 진술이 이후 전체 절차에 큰 영향을 주는 만큼, 사실관계를 신중히 정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성범죄 수사에서는 한번 진술한 내용을 나중에 번복하기가 쉽지 않고, 사소해 보이는 진술의 불일치가 신빙성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조사를 받기 전 자신이 기억하는 사실관계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고, 객관적 자료와 어긋나는 부분은 없는지 미리 점검해 두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형벌과 별개로 따라오는 보안처분
성범죄로 유죄가 인정되면 형벌 외에 여러 보안처분이 함께 부과될 수 있습니다. 일정 성범죄로 유죄가 확정되면 신상정보 등록 대상이 되어 정해진 기간 동안 정보가 등록·관리되고, 사안에 따라 신상정보를 공개하거나 지역 주민 등에게 고지하는 명령이 내려질 수 있습니다. 또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에 일정 기간 취업이 제한될 수 있고, 재범 위험성 등이 인정되면 전자장치 부착명령이나 보호관찰이 부과되기도 하며,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이 함께 따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각 처분은 요건과 기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으므로, 처분의 대상과 범위, 기간을 정확히 따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고와 허위 고소라는 또 다른 문제
성범죄 사건에서는 억울하게 지목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친고죄가 폐지되고 피해자 진술의 비중이 커지면서, 사실과 다른 고소로 수사를 받게 되는 일도 생깁니다. 이때는 피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진술이 일관되는지, 객관적 정황과 맞아떨어지는지, 진술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면밀히 따지게 됩니다. 다만 ‘무고’를 주장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고소가 허위임을 적극적으로 입증하지 못한 채 막연히 무고를 내세우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고, 반대로 정말로 허위 고소라면 무고죄로 맞고소를 검토할 여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객관적 증거와 정황을 차분히 정리해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는 것이 핵심이 됩니다. 진술의 신빙성은 단지 ‘말이 그럴듯한가’가 아니라, 그 진술이 다른 객관적 사실과 모순되지 않는지, 진술이 형성된 경위와 시점이 자연스러운지, 진술자가 그렇게 진술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를 두루 살펴 판단됩니다. 그래서 억울한 지목을 다투는 쪽에서는 감정적 호소보다 이러한 정황을 하나하나 짚어 가는 차분한 접근이 훨씬 설득력을 가집니다.
합의와 공탁, 그리고 처벌의 무게
성범죄는 친고죄가 폐지되어 합의만으로 처벌을 면할 수는 없지만, 피해 회복과 합의는 여전히 양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거나 진지한 사과와 피해 회복이 이루어지면, 같은 사안이라도 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합의가 어려운 경우에는 공탁을 통해 피해 회복의 의사와 노력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 시점과 방식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다만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부당한 압박으로 비칠 수 있는 접촉은 오히려 2차 가해로 평가될 수 있어, 절차와 방법에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처벌의 무게는 행위의 태양과 피해 정도, 전력뿐 아니라 이러한 사후의 태도에 의해서도 좌우되는 셈입니다.
카메라와 온라인이 만든 새로운 성범죄
최근에는 신체를 몰래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유포하거나, 동의 없이 성적 영상물을 제작·반포하는 이른바 디지털 성범죄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는 성폭력처벌법 등에 따라 별도로 무겁게 처벌되며, 촬영 자체뿐 아니라 저장·소지·유포까지 단계마다 책임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한 번 유포된 영상물은 회복이 어려워 피해가 지속되는 특성이 있어, 피해자라면 신속한 삭제 지원과 증거 보전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입장에서도 촬영과 유포에 대한 고의, 영상물의 성격, 가담 정도가 핵심 쟁점이 되므로, 사실관계를 정확히 정리해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피해자와 피의자, 각자의 출발점
피해자라면 증거를 신속히 보전하고 피해자 국선변호사나 진술조력 같은 보호제도를 활용하며, 형사절차와 함께 손해배상이나 합의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대로 피의자나 피고인이라면 초기 진술이 전체 절차를 좌우하므로 사실관계 — 경위와 태양, 동의 여부, 고의 — 를 신중히 정리하고, 유죄가 인정될 경우 따를 보안처분까지 고려한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저항이 없었다’는 점에 기대기보다 행위의 구체적 맥락을 다투는 접근이 한층 중요해졌습니다.
관련 정보 — 성범죄 변호사 상담 · 강제추행 폭행·협박 기준 변경 판례 해설(2018도13877 전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