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선의 지시를 전달했을 뿐인데 — 직권남용과 ‘의무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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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선의 지시를 전달했을 뿐인데 — 직권남용과 ‘의무 없는 일’

변호사
목차

핵심 요지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권한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하고, 그로 인해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거나 구체적인 권리행사를 방해받는 결과가 생겨야 성립하며,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직권남용이 인정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이 한 일이 곧바로 의무 없는 일이 되지는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상대방이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등의 임직원이라면, 그가 한 일이 직무범위 안에 있고 관련 규정의 원칙·기준·절차를 어기지 않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무 없는 일로 보기 어렵습니다.

상급자나 다른 기관의 요청을 받아 자료를 보내고 절차를 멈추고 결과를 보고했는데, 나중에 그 일이 직권남용 사건의 한 부분으로 수사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시한 쪽은 권한 안의 일이었다고 말하고, 지시받은 쪽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대법원은 이 죄를 두 단계로 나누어 따지라고 합니다. 권한을 잘못 썼는지, 그리고 그 때문에 상대방이 법령상 할 의무가 없는 일을 하게 되었거나 권리행사를 방해받았는지입니다. 이 글은 그중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를 중심으로 다룹니다. 어디서 갈리는지 정리해 드립니다.

조문이 정한 것

형법 제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합니다.

주체는 공무원입니다. 행위는 직권의 남용이고, 결과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 또는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입니다. 어느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무엇이 직권남용인가

대법원은 직권남용을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그 권한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8도2236 전원합의체 판결). 권한 밖의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권한 안의 일을 하는 모습으로 실질적·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라는 뜻입니다.

남용인지를 판단할 때는 세 가지를 종합합니다. 그 직무행위가 법령이 직권을 부여한 본래 목적에 따라 이루어졌는지, 행위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볼 때 필요성과 상당성이 있었는지, 직권 행사가 허용되는 법령상 요건을 충족했는지입니다.

같은 판결에서 대법원은 정부 지원을 신청한 개인·단체를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배제하도록 한 지시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원심 판단을 받아들였습니다.

남용했다고 바로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대법원은 이 죄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는 행위를 했다는 것만으로 곧바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직권을 남용하여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되었거나 구체적인 권리행사를 방해받는 결과가 발생해야 하고, 그 결과가 직권남용 행위로 인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의무 없는 일인지는 직권을 남용했는지와 별도로, 상대방에게 그 일을 할 법령상 의무가 있었는지를 살펴 따로 판단합니다. 대법원은 지시가 위법하다는 이유로 그에 따른 행위를 곧바로 의무 없는 일로 보면 이 요건을 따로 둔 의미가 사라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지시를 받은 사람이 공무원이라면

상대방이 일반 사인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무원의 직권에 대응하여 따라야 할 의무가 없으므로, 그에게 어떤 행위를 하게 했다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공무원이거나 법령에 따라 공적 임무를 부여받은 공공기관 등의 임직원이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행정기관 사이에는 협조와 의견 교환이 늘 있고, 이는 상하기관이나 감독기관과 피감독기관 사이에서도 이루어집니다. 대법원은 이런 관계에서 요청을 듣고 의견을 밝히거나 협조하는 행위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기준은 이렇습니다. 상대방이 한 일이 형식과 내용에서 직무범위 안에 속하고, 법령과 관련 규정에 따라 직무수행 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이나 기준, 절차를 위반하지 않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같은 사건 안에서도 결론이 갈렸습니다

위 판결의 사건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은 산하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를 행위별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지원배제 방침을 위원들에게 전달하게 한 행위, 배제 방침이 관철될 때까지 사업 절차를 중단하게 한 행위, 심의위원에게 배제 대상자의 탈락을 종용하게 한 행위, 배제 업무에 용이하도록 심의위원을 구성하게 한 행위 등은 법률이 보장한 위원들의 독립성과 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훼손하는 것이어서, 직원들이 지켜야 할 법령상 의무에 위배되는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각종 명단을 송부하게 한 행위와 심의 진행 상황을 수시로 보고하게 한 행위는 달리 보았습니다. 산하기관은 사업 수행에 관하여 부처의 감독을 받아 일반적으로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등 협조할 의무가 있고, 직원들은 그 이전에도 부처의 지시에 따라 신청자 명단을 보낸 적이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대법원은 종전에도 업무협조 차원에서 명단을 보내고 보고했는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이번 행위가 종전과 어떻게 다른지를 심리했어야 한다며 이 부분의 심리가 부족하다고 보았고, 관련 부분을 포함해 원심판결을 주문에서 정한 범위로 파기하여 돌려보냈습니다.

이 판결에는 증거능력, 직권남용, 강요 등 여러 쟁점에 걸쳐 별개의견과 반대의견이 있었습니다. 이 글은 직권남용에 관한 다수의견을 설명합니다.

조사를 앞두고 계신 분께

첫째, 지시의 근거를 확인하십시오. 그 지시가 어떤 법령상 권한에 근거한 것이었는지, 그 권한을 부여한 목적에 맞게 쓰였는지가 남용 판단의 출발점입니다.

둘째, 지시를 받은 사람의 의무를 따로 정리하십시오. 그 사람이 사인인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인지, 관련 법령이 그 사람에게 어떤 직무와 의무를 부여했는지에 따라 의무 없는 일인지가 달라집니다.

셋째, 종전 업무 관행을 자료로 남겨 두십시오. 같은 종류의 보고나 자료 송부가 이전에도 있었는지, 그 근거가 무엇이었는지는 대법원이 직접 심리하라고 한 사항입니다.

넷째, 행위를 하나하나 나누어 보십시오. 하나의 사건 안에서도 행위별로 결론이 갈릴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 더프라임은 이런 사건을 직권의 근거, 남용 여부, 상대방의 법령상 의무, 결과와 인과관계로 나누어 검토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위법한 지시를 했다면 그것만으로 직권남용죄가 되나요?›

그것만으로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직권남용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되었거나 구체적인 권리행사가 방해되는 결과가 발생해야 하고, 그 결과가 남용 행위로 인한 것이어야 합니다(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8도2236 전원합의체 판결).

Q지시가 위법했으면 따른 일은 모두 의무 없는 일인가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지시가 위법하다고 하여 곧바로 그에 따른 행위가 의무 없는 일이 된다고 단정할 수 없고, 지시를 받은 사람에게 그 일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인지를 따로 따져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Q다른 기관에 자료를 보내 달라고 한 것도 문제가 되나요?›

상대방이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이고, 자료를 보낸 일이 직무범위 안에 있으며 관련 규정의 원칙·기준·절차를 어기지 않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무 없는 일로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법률이 독립성을 보장한 절차에 개입하게 하는 등 관계 법령상 의무에 위배되는 일을 하게 했다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Q처벌은 어느 정도인가요?›

형법 제123조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정하고 있습니다.

Q무엇이 직권의 남용인지는 어떻게 판단하나요?›

그 직무행위가 법령이 직권을 부여한 본래 목적에 따라 이루어졌는지, 행위 당시 상황에서 필요성과 상당성이 있었는지, 직권 행사가 허용되는 법령상 요건을 충족했는지를 종합하여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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